출세해야 된다
남보다 빨리 남보다 먼저
딴 데 신경쓰지 말고 쩽신 차리라
이 애미 니 하나만 믿는다
지겨워? 다 니 살라고 하는 소린데
O자 할매 큰아들은, 갸가 서울대
법대 다니는데, 사신가 먼가
합끽했다카드라
우째 니는 대학 들어가서 공부하는
꼴을 몬 보네
성적표는 와 안 가져오는기가?
피리가 운다
뱀을 일으킨다
피리가 운다, 흐느적흐느적
뱀이 몸을 흔든다
화가 난 피리가 거센 화음을 내밷고
머리 숙인 뱀은 중심을 잃는다
-정신 차려
넌 독이 올라야 해, 이빨을 더욱 갈고
뱀은 머리를 든다, 춤을 춘다, 아찔하게
아찔하게 하늘이 춤을 춘다
피리를 향하여
날름거리는 붉은 혓바닥
메롱
여기는 숲
그랜져가 시내버스를 앞지르고
시내버스가 그랜져를 앞질러 달린다
종로 X가, 먼저 급커브를 틀려는 시내버스를 들이받은
오토바이에서 튕겨버린 남자의 머리가 박살나고
그 주위를
급정거한 사고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피를 본 까마귀떼처럼 몰려든다, 밀려드는 숲
굵직한 뱀의 몸 속에서
수백 마리의 독 오른 뱀들이 우르르 뚫고 나와
몰려드는 숲으로 난 구멍을 향하여 기어올라오고 있다.
독 오른 숲
남의 짓밟고 자라난 거짓의 시멘트제 건물들이 햇빛을 가리고
먹이사슬의 포식자가 되어 아가리를 좍 벌린다
나는 너의 먹이 너는 나의 먹이
먹이사슬의 노예들, 서로가 혓바닥을 내밀지
피할려구? 숨을려구? 웃기지마
여기는 숲, 자기만이 보장하는 생명보험
밤비가 내린다
오늘, 처음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빗방울이 바람에 쓸린다
머릿속에서 빵꾸난 성적표가 바람에 쓸린다
영등포역 부근, 잠시 멈춰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다시 걷는다, 우산도 없이, 모른다, 몰라, 에라 몰라,
주머니는 텅 비었고
어떻게 해서 여기로 왔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사방에 듬성듬성, 늑대 눈 같은 불빛이 보이고
어디선가 또아리를 튼 뱀이 혓바닥을 내밀고 불쑥
나타나겠지
갑자기, 두렵다
걸음은 빨라진다
불쑥
앞에 막아선 우산 하나
우산을 위로 젖히고
-어디가? 내 잘해 줄게, 놀다가아
덥석, 팔이 붙들리고, 몸이 밀착되고
휘감겨 오는 붉은 혓바닥의 유혹
유리상자 안에서
모조나무를 뱀이 기어오른다
또 한 마리 뱀, 모조나무를 휘감으며 기어오른다
뱀과 뱀이 마주쳤다
뱀, 흠칫한다
또 한 마리 뱀,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천천히, 둘은 서로 엉키고 서로의 몸을 휘감는다
비늘의 상처 같은 촉감을 느끼면서
피리웃음에 지쳤던 그들은
얼굴을 부비며 허물 벗을 때를 기다린다
기다린다......
그녀의 팔을 뿌리친다, 우산을 든 그녀가 막아선다
고개를 흔든다, 고개 흔드는 걸 보는
그녀의 눈이 슬프게 반짝인다. 그녀의 눈에
겨울처럼 비친 눈도 슬프게 깜빡거린다, 아주...
잠시였다......그녀의 옆으로 비켜서 뛴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는데
젖은 그녀의 눈이 계속 앞길을 막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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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장원재 - 독사/images/i_list.gi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