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를 쓰겠다는 생각에 들어 와 보니 이미 재훈이가 글을 올렸네요. 그래서 전 이번 산행과 최근에 겪은 일들을 엮어서 후배에게 보내는 글을 하나 써 보려 합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 여성봉과 오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먼저 도착한 곳이 여성봉. 여성의 가슴을 닮았다고 하나는 두 개의 완만한 암봉이 나를 맞았다. 암봉이라고는 하지만, 뾰족한 산봉우리가 아니라 평평한 너럭바위라 앉아 쉬고 좋았다. 조금 늦게 올라오는 일행들-남재, 재훈, 형삼-을 기다리느라 바위에 누웠다. 멀리 구름 사이로 능선을 따라 보이는 오봉이 있다. 정말 산 정상의 바위 능선을 따라 놓인 공깃돌 같은 다섯개의 바위, 그 중 네번째 바위는 산신령께서 힘이 모자라 덜 올려 놓으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란다. 그 말대로 다른 바위들의 발치에 겨우 매달린 혹같은 느낌의 바위. 그러나 하늘을 메운 암석의 선 위로 놓인 오봉은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러고 누워있자니 바람을 따라 운무가 몰려와 나를 감싼다. 내가 구름과 안개인지, 구름과 안개가 나인지. 운무에 휩싸여가는 오봉을 보니 신비롭다. 산의 거친 숨결이 하늘의 차가운 기운과 만나 허연 입김으로 화하는 순간이다. 안개에 젖었나 싶더니 갑자기 후두둑 빗줄기가 긋고 지나간다. 이어지는 능선을 안개에 잠겨 걷는다. 마치 내가 무릉의 계곡을 건너 신선들의 놀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인 것 같다. 내가 산길을 걷는지 안개 위를 걷는지 모르겠다. 오봉에 도착했으나 맏형인 주봉은 의젓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머지 어린 형제봉우리들은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안개의 휘장 뒤에 몸을 숨기고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다. 하산길에 안개가 더욱 짙어져 불과 몇 미터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길을 찾는 어려움 보다 앞서는 것이 훅 끼쳐오는 숲과 나무의 향기와 촉촉한 안개의 손길, 옅은 베일을 두른 송추계곡이다. 기나긴 하산길을 내려가는 배불뚝이 돼지 삼형제-나, 재훈, 형삼-이 지칠대로 지친 발길 앞에 갑자기 바위 절벽 사이에서 솟아난 듯한 냇물이 있다. 거기에 앉아 부어오른 발등과 지치고 놀란 육신을 쉬어 본다. 산의 정기를 받은 듯 새로운 힘을 충전하고 내려오는 길에 산행의 백미라 할 송추폭포를 만났다. 아주 알맞은 크기의 푸른 물줄기와 옥색의 소가 놓여있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마치 누군가 그래픽으로 그려 놓은 듯한 풍광이다. 내 말이 표현할 방법을 잃고 그저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담기에 분주했다.
산에 다녀오며 새삼 추하고 못난 인간과 대조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또다시 느낀다. 이런 산을 사랑하고 자주 찾는 것은 인지상정인 듯 하다. 그리고 내가 비록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인간의 어휘와 표현이 얼마나 한계가 극심한 것인지 알겠다. 연암 박지원이 요동벌판의 광대무변한 장엄 앞에서 그저 “통곡하기에 좋다.”라고 표현한 바를 이제 이해할 듯하다. 모든 감정 중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이 북받쳐 감격스러움을 표현할 방법을 통곡으로밖에는 찾을 길이 없는 경지. 이러니 당대 가장 빼어난 시인이라는 연암이 시 한수 남기지 못한 채 울고만 있었던 심경을 이해할 것 같다.
시인을 꿈꾸는 후배가 산을 어림잡아 오백 봉우리 이상 다녔다고 한다. 내가 겨우 몇 십 개의 봉우리를 다녀 본 것에 비하면 그 견문과 감상의 경지가 사뭇 격이 다르다 하겠다. 그 친구는 내가 이번 산행에서 느낀 아름다움보다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경치를 수도 없이 보고 느꼈을 것이다. 시인을 꿈꾸는 그가 요즘 시를 쓰는지 안 쓰는지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시를 보여주지 않는 걸로 보인다. 나는 그가 시인으로 시를 쓰는 것이 좋다. 그의 시를 보고 감탄하고 그의 감각과 느낌에 공감하며 행복했다. 그런데 요즘 그는 시를 쓰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의 능력으로 표현은커녕 감당키도 어려운 아름다움의 결정, 나무와 숲과 산과 계곡을 만나는 시간을 수없이 지내 온 그에게 이 남루하고 누추한 인간의 언어로 지은 집인 시가 가당치 않은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그가 더 이상 산에 가지 않기를. 그가 가진 따뜻한 마음과 눈이 이 불쌍하고 지친 우리들을 향해 돌려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이 힘겹고 불쌍한 삶을 아름답게 사랑할만하게 만들어 줄 시를 다시 쓰길 원한다.
정호야! 다시 건강해진 모습 보여주고, 기다리는 너의 시집도 보여주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도 너의 눈과 마음으로 느끼는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고 살만해져 아등바등 살아낼 힘을 얻지 않겠느냐. 산에 올라서 산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후배가 생각나 문득 써 본다. 힘 차리면 같이 산에도 오고 시도 많이 많이 써라. 사랑스런 송시인으로 남아주라.
송정호 (2011/07/04 18:59:26)
ㅎㅎ 이정록 시인의 슬픔이라는 시를 참 좋아하는데
문득 그 1행의 詩가 미치도록 생각이 나네요.
열매보다 무거운 꽃을 단 生이 있다.
인간이 슬픈 이유를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쩌면 지금 나의 삶을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누군가는 나보다 더 내 삶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_bleen/images/view.gif)
_bleen/images/w_name.gif)
_bleen/images/w_subject.gif)
시인을 꿈꾸는 후배에게-산행후기를 대신하여_bleen/images/i_list.gif)
_bleen/images/i_next.gif)
_bleen/images/search.gi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