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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5 10:21:37)
이재훈
최민석 - 슬레이트와 눈
슬레이트와 눈


                                                       10 최민석 (2015 글터문집)


  높고 낮은 공장 건물의 처마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 파란 슬레이트
지붕 옆으로 눈발 나리고 있었다. 하얀지 거무튀튀한지 당최 모를 것
이었다. 아침부터 공단도로는 옅은 하얀 색으로 포장되고 있었으나 그
휴일에도 이따금 회송하는 버스가 지났다. 그 버스들을 타고 공장 기
숙사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다음 날도 출근을 해야했고,
그 현실은 계속될 것이었다. 조기출근, 연장노동, 주말 특근의 연속...
욕 먹을까봐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내게는 더 심했다. 넌 그
정도 학교 다니면서 이런 것도 못하냐는 말. 학교의 이름이 짐스러웠다.
  나는 진보주의자입네, 활동가입네 하고 살았었다. 그때는 '대중'이니
'민중'이니, 나도 모를 말을 입에 올리고는 했다. '현장'에서, 나는
'대중'을 만났을까? 자신이 정규직인 줄 아는 계약직 노동자만이 있었고,
기분 나쁘면 이 새'끼 저 새'끼 부르짖는 관라지만이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엔 가졌었다. 하지만 노동의 새벽, 노동의 하루,
노동의 저녁이 이어져 곧 그 생각은, 눈 덮여가던 공단대로 마냥
흐릿해져갔다.
  어느 겨울의 주말, 해가 지는데 공장 옥상에 올라갔다. 간만에 16시
인가에 모두 퇴근한 다음 나는 저녁놀을 바라보았다. 그 햇살이 눈
물겨웠다. 문제가 있다 생각한들 호소할 곳도 없었다. 담배만 계속 태
우고, 태우고, 또 태우며 줄담배만 피웠다. 흐릿한 하늘과 싸락눈 속에
연기가 스몄다. 파란 지붕들이 부옇게 되어가고 있었다. 내겐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없었다. 살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했다.
창살없는 감옥에 목구멍이 간수였고 학자금이 채찍이었다.
  최소 나보다 열 살은 많았던 '형님'들은 항상 기숙사 방에 모여 술을
마셨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마실 기운도 없어 일이 끝나면
애니메이션을 보며 잠이 들었다. 그게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가끔 우울해지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3킬로미터 떨어진 역 근방의
이마트까지 달렸다. 학교 선배가 주말 새벽에 불러 철티비만도 못한
가정용 자전거를 타고 남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달리면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행동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던 그 순간들을, 지금 뭐라고 묘사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저, 'Oh, words fail ma'
  가끔 지금도 그 공장에 다니는 형님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말려무나.' 눈발 세차던 1월, 아침부터 눈을 쓸고는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내게 씀쓸한 웃음으로 손 흔들어주시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진보'를 애기하던 나는 그제야 그것이 어떤 의미의
단어인지 알게 되었다. 일하는 것이 슬픈 세상. 일하는 곳이 지긋지긋
한 세상. '진보'란 그런 세상을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모
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공단을
나오는 버스 창가로 슬레이트 지붕들이 이어졌다. 그 경사가, 그 날카
로움이 내 마음을 베튼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바꿔야 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을,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우
선 나 스스로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눈이라고 해서
항상 차갑지는 않을 것이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함박눈 같은 사람, 나
는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나의 등을 두드
려 주었고 함께 농담을 나누며 졸음과 싸워가며 일했던 그 모든 이들과
함께.
  곧 다시 겨울이 온다. 뽀족한 지붕들이 포근하게 덮일 것이다. 그 눈
들을 쓸어내느라 형님들은 빗자루를 들고 방을 나서겠지. 그 걸음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해본다.




- 감상 -

고된 노동 후에 한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소주같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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