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사학년 때다 뭘 써도
좋다 원고지 다섯 장만 채워와라! 다락방에 올라 두근두
근, 처음으로 원고지라는 걸 펼쳐보니(10 X 20)이라 쓰여
있는 게 아닌가? 그럼 답은 200! 구구단을 뗀 지 두어 달,
뭐든 곱하던 때인지라 원고지 칸마다 200이라 숫자를 가
득 써냈다 너 같은 놈은 교사생활 삽십년, 개교 이래 처음
이라고 교문 밖 초롱산 꼭대기까지 소문이 쫙 펴졌다 그로
부터 십오년, 나는 작가가 되었다 지금도 글이 콱 막힐 때
마다, 그 붉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타고 이백이 솟아오른다
그때 나는, 이백과 같은 길을 걸어갈 거라는 막연한 운명
을 또박또박 적어넣었던 게 아닐까?
- 감상 -
원고지에 200을 채워 넣는 순간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시가 됐다.
옆집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이제 중학교 수학이 초등학교로 내려온다고 한다.
이 시인은 초등학교 4학년때 구구단을 배웠나 보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 구구단을 배웠는데
교육은 점점 빨라지고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조숙해 질 수록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우리집은 침대가 없다.
이불을 펴 놓고 자는데
자식들이 잘 때면
방 전체를 마음대로 휘젖고 돌아 다닌다.
창문 벽에 붙었다가 농에 가있다가
피아노 밑에 들어가 있다가
그런데
소파에서 제우면 가만히 누어 잔다.
신기하다.
잠을 자도 무의식은 살아 있나보다.
많이 알 수록 무의식을 가두고
그게 의식을 가두고
눈을 가리는 건 아닐까
무지가 현실의 허를 찌르는 경우가 있다.
김태일 (2012/05/07 19:13:27)
재미있네. 감상이. 빨리 배울수록 더 똑똑해진다면 좋겠지만, 요즘 느끼는 문제는 빨리 배운 아이들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줄 선생이 없다는 점이다. 빨리 배우고 더 깊고 넓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걸 끌어줄 스승이 없는 나라가 되어가는거 같다. 요즘의 대한민국은 시험을 합격시키는 교육은 거의 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지혜를 가르치고 세상을 사는 법을 가르치는 데는 원시시대를 방불케 하는 듯 하다.
/images/view.gif)
/images/w_name.gif)
/images/w_subject.gif)
이백/images/i_list.gif)
/images/i_next.gif)
/images/search.gi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