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야 산다.
새벽 4시 52분. 몹시도 추운 오늘 새벽에 다시 잠을 깬다. 이가 아프다. 치과의사의 말처럼 부모님 모두가 잇몸이 안 좋고 나 역시 그런 유전적 소인으로 인해 잇몸이 자주 붓고 아프다. 이미 어금니 하나와 사랑니 하나는 잇몸이 붓고 아파서 빼 버렸다. 며칠째 계속되는 새벽녘의 이앓이에 잠을 설치고 있다. 옆에는 일주일째 기침감기를 앓는 아내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아픈 게 싫고 귀찮고 힘들다. 이 놈의 사랑니가 또 말썽이다. 차라리 뽑아 내버렸으면 하는 심정이다. 아프고 싶지 않다. 하기야 세상에 아픈 게 좋은 미친 녀석은 몇 되지 않을 테니 당연하고도 당연한 바람이긴 하다.
그러나 인간은 아파야 산다. 그리고 인간이 아픔을 알아야 세상이 살고, 온 생명이 산다. 무슨 거창한 인류애나 생명존중을 말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 나를 아끼는 부모도, 내가 사랑하는 자식도, 심지어 평생 유일하게 내 결정에 의해 만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할 내 아내도 내 아픔을 모른고, 그 아픔을 대신할 수 없다. 하물며 무슨 이웃과 인류 따위가, 혹은 나와 무관한 나무와 새들과 짐승들이 어찌 내 아픔을 대신하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석가께서도 갈파하시지 않았더냐.
먼저 내 몸과 마음이 왜 아픈지 돌아보라. 내가 지녀온 꿈이 망가지고 사라져 마음이 아픈 것인지, 밥 벌어먹고 사는 것에 치여 병들어가는 내 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내가 대신 어찌해 줄 수 없는 자식의 앞날이나 아픔 때문에 나 역시 아픈 것인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라. 그러면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알게 된다.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이 사회가, 이놈의 세상이 무엇이 잘못되어 나를 아프게 만드는지 돌아보자. 생각하고 생각하자. 생명은 그런 것이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환경과 삶의 조건, 그리고 자신의 몸을,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생명이다. 그리고 나면 내가 나만이 아니라, 내 곁에 수많은 아픈 “또 다른 나”가 있을 것이다. 보일 것이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이유와 원인으로 아프고 병들어 가고 있다. 이제 “내가 아프다.”를 넘어 “우리가 아프다.”를 느끼는 차원이 생기게 된 셈이다. 어설프게 남 대신 아파 줄 수 있다 하지 말라. 오만이며 지나친 자기우월이다. 온전히 자기 아픔을, 자신의 병을 앓아내고, 그 이유를 알아내자. 그러면 보인다. 다른 사람과 생명과 지구와 우주가 왜 아픈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인간은 아파야 산다. 그리고 이 아픔을 제대로 알 때만이 사람 모두가 아프다는 걸 안다.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아픔도 알게 된다.
인간이 아파야 세상이 살고 생명이 살고, 지구가 살고 우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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