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04-06-23 09:31:25)

남재

글쎄요,

좀전에 들은 말인데요..
수요일 오전부터 막 울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모순처럼 울수가 없지요.
운다는 형식이 이미 울고 싶은 이유에 사로잡혔거든요.

일이 좋아?
라는 말,
바빠?
라는 말,
왜 그렇게 혼자서 다해?
라는 말,

너무 쓸쓸한 말 아닙니까?
그냥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진중하게 던지는 그말이요.
앞에 "정말"이 생략 된 위의 말들이요.

저 질문에 답하기 위에
어디서 풀어나가야 할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과거의 어떤 순간이 생각나면서 또 그 질문을 던지게 되더군요.
"세상하고도 바꿀 수 없는게 뭐가 있을까?"라는 것이요.
개인이든, 일반적이든.. 뭐 분류에 관계없이요..

저는 그것이 바로 "목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하고도 바꿀수 없는 무언가는 분명히 가치적이고 내용적인 것이지만,
목숨이라는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세상이 있을 수가 없지요.

모든 조직과 개인이 다 그렇듯이, 성장과 행복이 목적이기 이전에
생존이 더 일차적인, 근본적인 것이 아니던가요.

내게는 일상이 목숨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참 우울한 인생이에요, 사는게 목숨같다니 --; )
그런데 사실 목숨 아닌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오늘 뒤통수를 맞은 기분입니다.

시인 이정록씨의 짧은 시 "슬픔"의 전문은 다음과 같은데요,

"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生이 있다 "

열매를 맺기 위한 꽃은 그 과정이고 내면이고 본질일 것입니다.
이정록씨의 인생관이 비관론에 가까울까요?
저 한줄의 시를 가지고 화자는 단지 "인생은 슬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나 내면에는 썩고 고인 것도 있을 테고, 바람에 스치면 붉은 선혈이 튈 거 같은 상처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생활고이든, 실연에 의한 것이든, 자아에 대한 것이든지, 무엇이든지요.

"내게는 일상이 목숨같다"고 느끼는 것이 오바액션인가요?

울 수 없는 이유를 알겠지요?
아니 울어도 되는 걸까요?

여기서 제 생각의 발걸음은 멈춰 서 있습니다.
한참동안 .. . ..

모우 (2004/06/23 18:01:58) 나 역시 울고 싶지만, 운다는 형식에 메여 울고 있지 못하고 있구나.. 정말 적절한 표현이야.. 슬프고 화가 나고,, 감상적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모든 일상을 접고,, 촛불을 밝히고 싶다. 마음 가득 고인에 대한 생각과 전쟁 반대를 외치고 싶다..

92윤경 (2004/06/23 20:24:52) 남재야..울고 싶거나, 꽃이 더 무겁게 느껴지거나.. 일상이 목숨같다..느껴질때는 그냥.."내가 좀 지쳤나보다.."라고 생각하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그냥 좀 지쳤을 뿐... 기운내~~~ 남재의 지금 모습을 얼마나 다들 좋아하는데~~~

남재 (2004/06/24 00:09:52) 자영누나, 윤경누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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