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백 부부는 "사랑"을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인 단순한 사적인 영역으로 가두지 않는다. “사랑”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회학적으로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의 장점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울리히 백 부부는 충분히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보이는 이 사랑이란 질기고도 복잡한 감정에 공통성이 있다고 보았으며, 우리의 감정과 태도에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어떤 사건 하나하나에 따르는 구체적인 개인의 느낌과 대처방식은 다를 것이다. 물론 구체적 사건도 다를 것이고 처지도 다르다. 하지만 이 사랑이란 감정을 옥죄는 데 개인의 구체적 사연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배경과 원인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슷한 사회구조와 경제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사랑의 양식이 통계를 들이밀 필요도 없이 ― 울리히 백은 “거대한 사랑 백화점”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헤어지고, 그러면서 또 다른 연인을 만나기도 한다. 증가하는 이혼율과 이혼율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높은 재혼율, 적극적 페미니스트들이 거론하기도 하는 한부모가정(이 경우 여성이 가장이 되는 가족), 동거가족, 동성부부 등 현대사회는 과거 사회와는 달리 사랑, 결혼, 가정의 양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제구조와 사회구조라는 전제 아래에 있는 독일, 유럽,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을 포함해서다. 물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좌파세력의 입김이 많이 작용해왔다. 그러기에 빈부격차가 심한 편이긴 하나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물론 그들 사회가 잘 되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우리나라가 뒤진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하겠지만.......)
제리 스프링거 쇼를 혹시 보신 분이 있다면, 거기에 나오는 커플들의 사연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조작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설령 미리 설정된 꾸며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가지각색의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이야깃거리 하나만은 그래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얽히고설킨 불륜의 이야기들, 남편과 부인의 외도는 신기하지도 않아 쳐주지도 않는다. 오빠의 애인과 사랑하게 된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동생,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근친상간, 동성애, 양성애, 뿐만 아니라 어떤 여자는 동성과 이성을 가리지 않고 여러 명의 사람들과 만난다. 그것을 비난하는 한 청중에게 질투하는 거냐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그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미국의 사회경제적인 모든 구조적 모순들이 한눈에 보인다. 그 쇼에서 정서적 사랑을 의미하는 ‘러브’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그 쇼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배우자와 가족의 부양능력, 즉 직업의 유무, 이성과 얽힌 끝의 최종적인 결말로서의 동성애, 그것은 하나의 공식처럼 흐른다. 또한 가족 내부의 위선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폭로한다든가(도덕적 수치심과 죄의식을 결여한 근친상간 등을 통해), 때로는 심도 깊은 흑인과 백인의 갈등(인종차별 문제)까지 다루고 있을 때가 많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제리 스프링거 쇼는 ‘사랑’이라는 일상적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사랑과는 거리가 먼 외려 미국이 궁금해지는 쇼에 가깝다. 한편 미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쇼이기도 하다. 은폐된 인간의 금지된 욕구를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폭로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선 나를 배신한 사람과는 전혀 화해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친구’라는 말은 때로 우리에게 주는 소년소녀 시절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우정’의 의미가 아니라, 연인이 아닌 모든 관계는 ‘친구’로 불린다. 단지 잠을 잤다는 이유만으로....... 물론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음지의 영역을 공적인 자리로 불러내서 공론화시킬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쇼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폭력, 비난, 욕설 등 비이성적인 해결책 등이다.
(논지를 벗어났으니 다시 돌아오면,,,)
이 책의 첫장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인용시작)
[사람들은 온갖 것과 온갖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 할머니, 괴테, 하얀 피부 위에 걸쳐진 검은 망사 스타킹, 치즈 샌드위치,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의 따뜻한 미소, 갓 구운 빵, 떠다니는 구름들의 희롱과 발장난, 에르나, 에바, 폴, 하인쯔-디트리히.......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연속적으로, 과도하게, 조용하게, 또 손으로, 이빨로, 말로, 시선으로 그뿐만 아니라 대단히 강렬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성적인 사랑(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이 워낙 강렬하고 격동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광범위한 사랑의 잠재력을 단 한 번의 애무,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키스에 대한 열망으로 축소시켜 버리고 만다.
.......
여기서 사랑은 충족과 같은 것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충족은 사랑의 오직 한 측면, 사랑의 맹렬한 한 측면, 즉 육체적 스릴을 가리킬 뿐이다. 심지어 에로티시즘의 강렬한 유혹조차도, 새롭지만 여전히 친숙한 기쁨을 암시하며 정욕을 일깨우는 에로티시즘의 온갖 숨겨진 약속조차도 충족을 의미하거나 그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일단 목적이 '성취'되고 나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매혹적으로 보이던 육체는 아무렇게나 옷이 벗겨진, 어떠한 매력도 없는 낯선 살덩어리로 보이게 되지 않던가.
.....
충족이란 얼마나 쉽게 차가운 시선으로 변해버리는지! 바로 조금전까지도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너와 나를 하나로 만들며, 두 개의 걸어다니는 타부들이 압도적인 절박함으로 뒤엉켰던 그곳에서, 우리는 지금 비판적인 눈으로, 흡사 육륙 검사관처럼, 소와 돼지를 그저 소시지로만 바라볼 뿐인 푸주한의 눈길로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는 것이다.]
(인용끝)
인간에게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 것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서두. 우리는 한 사람만을 너무나도 사랑하다보니 나머지 다른 모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대상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외로움에서 출발하여(이 외로움은 사회구조의 ‘개인화’에 따른다), 나 자신과 똑같은 사랑을 찾았다. 그에게 정서적인 풍요를 느끼고 그것은 상대방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나르시스적인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일치, 합일, 공유’는 사랑이라는 관념에 함께 섞여 처음엔 그 사람과 나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그 사람에 동화되다 보니 모든 공유가 차이를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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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을 읽고나서(1)_bleen/images/comment_del.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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