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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8 23:04:48)
김자영
사랑은 너무 지독한, 그러나 너무 정상적인 혼란

사랑은 너무 지독한, 그러나 너무 정상적인 혼란

이 글은 독일의 부부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이 함께 쓴『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강수영 · 권기돈 · 배은경 譯, 새물결, 1999)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 · 편집한 것이다. 재수록을 허락해 주신 새물결 출판사 편집부에 감사를 드린다. -- 편집자 주

울리히 벡 ·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Ulrich Beck · Elizabeth Beck-Gernsheim)
  

<삶의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가 되어버린 시대>

  '도대체 엄마는 왜 결혼하신 거죠?' 커닝햄(Michael Cunningham)의 소설인『세상 끝의 집 A Home at the End of the World』에서 딸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묻는다. "걱정되지 않으셨어요? 엄마의 진짜 삶은 놓쳐 버리고, 뭐랄까, 어딘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곳을 가버리는 건 아닐까, 내가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말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 질문이 마치 귀찮은 파리라도 되는 양 손을 내저어 쫓아버렸다. 토마토를 으깨던 엄마의 손은 축축하고 번들번들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거창한 질문은 하지 않았단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넌 그렇게 많이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계획하는 게 어렵지도 않니?"

이와 비슷하게 터로우(Scott Turow)의 소설『거증 책임 The Burden of Proof』에도 어떤 미래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딸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아버지가 나온다. "[…] 그(아버지)가 한창일 때에는 모든 것이 명쾌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서구 세계 어디서 자라났건 중간계급 남녀들은 한결같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훌륭하게 키우는 것 등을 열망했다.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태어나 느지막이 결혼한 쏘니에게는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이러저러한 관계, 결혼, 남자 그리고 자신이 고른(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반쯤은 어린애 같은 별난 친구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은 던지면서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출발선상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새로운 시대'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우리는 사랑과 가족과 개인적 자유 사이에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임을 밝혀볼 것이다. 남녀의 성별 지위를 중심으로 구성된 핵가족은 이제 해방과 평등한 권리라는 쟁점 앞에서 산산조각나고 있다. 해방도 평등권도 이제 더는 편리하게 우리의 사생활 바깥에 머물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사랑이라고 불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혼돈이다.

<가족과 결혼을 둘러싼 문화적 불확실성>

(독일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족, 결혼, 직장은 여전히 인생의 설계, 인생의 조건, 적절한 일대기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단단한 초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이후 이와 관련된 모든 지점에서 온갖 선택의 가능성과 질문이 나타났다. 결혼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동거만 해야 할지, 그리고 이런저런 일을 직업을 얻기 전에 해야 할지 아니면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후에 할 것인지 또는 직업을 가진 채로 동시에 해야 할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되었다. […]

오늘날의 남녀들은 동거나 이혼, 계약 결혼 등을 시도하기도 하고, 가족과 직장, 사랑과 결혼, '새로운' 모성과 부성, 우정과 단순한 친분을 조정하려고 분투하면서 삶의 올바른 방식을 찾아낼 것을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 진행 중이며, 멈춰 세울 방법이 전혀 없다. 이것은 가히 계급 투쟁 다음에 닥쳐온 '지위투쟁'이라 할 만하다. […] 전통적인 사회적 정체성이 서서히 사라져감에 따라 남녀의 성별 역할에 대한 남녀간의 적대 관계가 사적 영역의 심장부에 출현하게 되었다. 누가 설거지를 하느냐 하는 문제로부터섹스와 '바람피우는 문제' 그리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온갖 태도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중요해 보이는 온갖 문제들에 걸쳐있는 이러한 적대 관계는 누가 봐도 크든 작든 분명하게 사회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있다. […]

이전 세대들은 먼저 자유와 남녀 평등이 달성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그 모든 영광과 갈망, 욕망을 찬연히 꽃피우리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희망했다. 사랑과 불평등은 불과 물처럼 상호 배타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이러한 이상의 끄트머리를 붙잡은 것처럼 보이는 이 마당에, 우리는 정반대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평등하고 자유롭기를 원하는 두 개인은 과연 어떻게 두 사람의 사랑이 자라날 수 있는 공동의 지반을 찾을 수 있을까? 자유란 구식 라이프 스타일의 잔해를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것,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만의 북 장단에 발맞추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가족과 결혼제도의 해체?, 글쎄 과연 그럴까?>

이러한 경향(이혼율의 증가, 가구 구성의 변화, 독신 가구의 증대 등)을 남녀 관계에서 무정부성이 증대하고 남과 연루되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식으로 단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반대의 경향 역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혼율이 1/3이라는 것은 2/3의 '정상적인 결혼'과 가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특히 소녀들과 여자들 사이에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예전에는 단지 젊은 남자들만이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되었지만, 그것도 비공식적이었으며 거기에는 언제나 남들의 능글맞은 웃음이 따라 다녔다. 오늘날에는 반수가 훨씬 넘는 소녀들이 여자들에게도 성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중의 반은 동시에 두 명 이상의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들이 우리를 오도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이전보다는 훨씬 더 방만해진 성적 태도 역시 엄격하게 규범화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결혼과 가족을 삶의 모델로 채택하는 것은 거부하지만 정서적 헌신은 추구한다. 안정적인 관계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도 이상이자 목표이다. "상대방에 대한 충실성은 법이나 종교적 윤리를 통한 공적인 정당화나 압력이 없어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며, 수많은 논란이 있어온 '가족과 결혼은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기도 하고 '아니다'이기도 한 것이다. […]

결혼과 가족 생활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들이 또한 이 두 제도가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들과 상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결혼의 종언을 보여주는 듯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재혼율 또한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혼이 여전히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출생률 감소를 보고서는 자식을 갖고 부모가 되는 일이 이제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사람은 수천의 여성들(남성들)이 불임에서 탈출하려고 온갖 방법을 강구하는 사실 앞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혼'을 선호한다고 해서 가족의 온갖 관습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족 연구자들은 아니라고 대답한다(물론 그렇다고 대답하면 자기 직업을 읽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혼 전에 동거하거나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커플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또는 비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며, 이들의 생활은 결혼한 커플과 거의 아무런 차이도 없다. […]

이러한 사실은 역설적인 동시에 불가사의하다. 가족은 해체되는 동시에 받들어 모셔지고 있다. […] 한편으로는 부부로서의 삶을 이상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만은 남녀가 이혼하는 이 양 극단적인 사태는 새로운 신념의 두 측면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신념은 뿌리뽑힌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에서 빠르게 추종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그들의 희망은 사랑에 있다. 사랑이라는 이 강력한 힘은 그 자체에 고유한 규칙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 불안, 행동 패턴 속에 자신의 메시지를 새겨 넣고, 사람들이 결혼하고 이혼하고 재혼하도록 이끌고 있다.



<사랑, 새로운 삶의 중심 또는 현대인의 세속적 종교>

두 사람이 하나의 개인으로 마주 서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이 세속적인 신흥 종교는 가정의 사생활 속에서, 이혼변호사 앞에서, 결혼생활 상담소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투닥거림을 통해 격렬한 종교적 논쟁이 되어버렸다. 사랑에 대한 갈망은 현대의 근본주의가 되어버린 것이다. […] 사랑은 종교 이후의 종교이며, 모든 믿음의 종말 이후의 궁극적 믿음이다. 사랑의 아이콘들은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소망의 물을 마시고, 여전히 우리 안에서 꽃피고 있다.

사랑은 사생활의 신(神)이다. 사랑은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또는 문화적 전통이나 설교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설계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성적 충동의 힘과 지속성으로부터 그리고 개인의 깊은 소망으로부터 자라나는 유토피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랑은 외적 의미와 전통에 방해받지 않는 종교이다. 그 가치가 연인들이 서로에게 깊이 이끌리고 주관적으로 서로에게 헌신하는 데 있는, 그리고 아무도 신도가 될 필요는 없으며, 따라서 개종할 필요가 없는 종교말이다.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생각과는 정반대로 사랑만이 삶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는 믿음은 사회의 근대적 변화가 낳은 논리적인 결과처럼 보인다. 약간 거칠게 표현하면 역사적으로는 종교, 계급, 사랑이 차례로 삶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해 왔다. […]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고 느끼는 개인들은 교회나 신의 보호나 계급을 찾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즉 자신과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후원과 이해를 약속해 주는 사람을 찾는다.

사랑은 점점 황량해져 가는데, 사람들은 사랑이 깨졌을 때조차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커다란 희망을 사랑에 걸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온갖 개인적 배신이 난무하는 불쾌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버팀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온갖 기대와 좌절에 짓눌려 버린 이 '사랑'이야말로 전통이 해체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새로운 삶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김자영 (2003/03/08 23:07:46)

http://pencil.kyobobook.co.kr 참조
 
남재 (2003/03/09 15:02:01)

음.. 참 쓸모 있는글인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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