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운 세상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
찬장의 그룻들이 이리저리 쏠리며 비명을 지르고
전등이 불빛과 함께 휘청거릴 때도
이렇게 순식간에 지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줄 몰랐다
우리가 지은 집 우리가 세운 마을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났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페허만이 곁에 남았다
그러나 황망함 속에서 아직 우리 몇은 살아남았다
여진이 몇차례 더 계곡과 강물을 흔들고 갔지만
먼지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에 새 풀이 돋기 전에
벽돌을 찍고 사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씻겨야 한다
종을 울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세우고
숲과 새와 짐승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좀더 높은 언덕에 올라 폐허를 차분히 살피고
우리의 손으로 도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노천 물이 끓으며 보내던 경고의 소리
아래로부터 옛 성곽을 기울게 하던 미세한 진동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워야 한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단 말은 그만하기로 하자
충격과 지진은 언제든 다시 밀려올 수 있고
우리도 전능한 인간은 아니지만
더 튼튼한 뼈대를 세워야 한다
남아 있는 페허의 가장자리에 삽질을 해야 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로 등을 밝히고
떨리는 손을 모두어 힘차게 못질을 해야 한다
세상은 지진으로 영원히 멈추지 않으므로
김태일 (2012/06/19 08:02:15)
도종환 시인은 우리를 두 번 놀라게 하는구나. 먼저 "접시꽃 당신"으로 자신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아내를 잊지 못하는 애절한 망부가를 불러 우리를 울게 하더니 그리고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재혼을 해 우리를 한 번 놀라게 하더니 이제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얼핏 듣게 만들어 나를 또 놀라게 한다. 그게 믿었던 옳음의 가치가 지진에 의해 늘 무너지는 현실. 아내가 죽고 사회변혁의 가치가 무너지고, 뭐 그런 일들을 개인사의 혹은 사회의 지진이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큰 재앙이며 변괴겠지. 그래서 괴로워 하거나 쓰러져 울지 말고 즉시 다시 일어나 나의 삶을, 혹은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웅변, 참으로 옳으신 말이다. 그러나 죽은 이를 위해, 무너져 버린 이상을 위해 조금 더 슬퍼하는 것도 인간적이지 않을가. 아 그리고 또 하나 개인의 죽음과 별개로 이상의 죽음은 그것을 추구하던 사람들의 과오이거나 시대적 변화로 인한 이상의 쇠퇴 혹은 퇴장에 의한 것일텐데 이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나 고민도 없이 그저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능사일가?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세상은 지진으로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해도 제발 인간으로서의 슬픔이라는 최소한의 감성과 이성적 반성, 과학적 고찰의 필요성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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