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일으키며 풀 한포기 없는 몽매한 길
끌고 얼마나 멀리 헤매어왔던가
소는 자하루 돌계단에서 풀썩 쓰러지네
동백꽃은 필 듯 아니 피고
세상길 버리고 동백숲에 숨어든 새들
비린 울음 삼키고 이 밤 어디서 젖몸살을 앓고 있는지
지나는 구름 밤새 오락가락 요사 창에 흩부려대던 것이
눈송인가 했더니 새벽 뜰 가득 별빛 쌓여 있네
별빛 공양 이고 새벽 법당 차가운 문고리를 당기니
길을 묻지 마라
여기 와서 길을 묻지 마라
소의 행방을 묻지 마라 하네
길 끝난 마음자리 동백꽃 재촉하네
- 감상 -
사람이 생을 마감할 때 쯤
길을 물어 무엇할까요?
삶을 물어 무엇할까요?
그렇게 비워지기에
동백꽃이 피나 봅니다.
겨울에 피는 동백꽃 왠지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마지막에 피는 꽃이면서
새해에 처음으로 피는 꽃이기도 하네요.
사람은 그렇게
절에 들어가서 한 번 마침표를 찎고 나와야
참길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 멋있는 것 같습니다.
미황사는 땅끝 마을 해남의 달마산에 있다고 하는데요.
저도 섣달 초닷새 미황사에 가서 동백꽃을 보고싶네요.
김태일 (2012/05/07 18:48:40)
달마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바위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죽 이어져 있어 그 풍광이 가히 큰 절을 품을 만한 산입니다. 해남에 사는 윤재곤 군을 방문해서 가족들과 함께 미황사를 간 기억이 나네요. 절도 아담하고 깨끗한데, 바로 달마산 그늘 아래 놓인 절이라 아늑하고 고요하기도 합니다. 절을 돌아 나오는데 30-40분이면 넉넉한 그리 크지 않은 절이지만, 왠지 조금 아래쪽의 마을과는 또다른 느낌이던 곳이었습니다. 백무산의 시를 보면 그가 과연 20여년전 노동해방과 계급투쟁을 외치던 그 "백무산"이 맞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제는 투쟁할 일이 모두 사라졌기에 서정성 짙은 시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노동운동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어리둥절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갔을때는 여름이라 동백꽃은 못 보았지만, 이번 4월초 부산에서 본 동백꽃을 사진첩에 올려 놓을 테니 아쉬운대로 이거라도 감상하시길.
이재훈 (2012/05/08 00:25:40)
시집에 담겨진 많은 시들은 형이 생각하는 백무산의 시들입니다.
이 시나 용장사지 가는 길은 조금 예외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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