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받아 먹던 밥상을 버렸다
어느날 다리 하나가 마비되더니
걸핏하면 넘어지는 그를 내다 버리며
어딘가 갈 데가 있겠지 하면서도 자꾸 뒤가 켕긴다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숙제를 하고
좋은 날이나 언짢은 날이나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남들은 다 어떻게 살든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하고 또 하는 잔소리에
아이들은 눈물밥을 먹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딱하다는 눈총을 주기도 했지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가족들에게, 실은 나 자신을 향하여
쓸데없는 호통을 치기도 했지
그러나 한끼 밥을 위하여 종일 걸었거나
혹은 밥술이나 먹는 것처럼 보이려고
배를 있는 대로 내밀고 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속옷 바람으로 둘러앉아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던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 받아 먹던 밥상을 버렸다
그러나 그가 어딜 가든 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 감상 -
오래된 것들에는 혼이 깃드나 봅니다.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밥먹던 생각이 나네요.
김태일 (2012/05/07 19:21:55)
삶을 나누는 대상이었기에 그런 거 아닐가? 예전에 사람들은 밥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그 사람과 영혼을 나누는 것이 된다고 믿었다. 마법사는 사람들이 남긴 음식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 병이 들게하거나 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먹다 남은 음식을 태우거나 어딘가에 묻었는데, 만일 밥이나 음식을 함께 먹게 되면 자신도 그 사람의 영혼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해치는 마법이나 주술을 쓸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우리나라 말로 치면 "한솥밥 먹는 식구"이고 영어로 말하면 "company, companian"("pan=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들= 동료, 동지)리는 말이란다. 빵을 나누고 밥을 함께 먹는 사이는 영혼을 공유한 존재, 소울메이트가 되는 것이니 낡은 밥상과 나의 인연이야 얼마나 깊고도 심오한 것이랴. 그러니 이 밥상이 어디를 가든 나에 대한 험담은 절대 한 마디도 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것이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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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신간 : 밥상을 버리며 - 『뿔을 적시며』(이상국,'12.2 창비)/images/i_lis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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