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번의 산행에서 만난 채남재 군이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살아가면서 사람을 설득하고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도 이런 일에 엄청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쉬움을 안고 있다 문득 집에 굴러다니는 책을 한권 집어 들고 운동을 가서 읽다가 혹시 이 책이 채남재 군의 질문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청한 책이 장마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책꽂이에 있던 책을 아무 생각 없이 가져 갔는데 의외로 재미도 있고, 다양한 일화들로 인해 이해가 잘 되는 책이었다.
이 글에서는 그 책의 몇 가지 예화를 소개하고 만일 마음에 든다면 사서 보시고 그게 아니라면 무시하셔도 좋다.
책이름- 모략 2권 언변 간사 경제 편. 출판사-들녘. 가격-12.000원
이 책은 중국의 군사전략가가 언변도 하나의 전술이며 전략이라는 생각으로 중국의 여러 고전 병법서와 고사들에서 이야기를 취해 정리한 언변 전술서라 하겠다.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게 만들어 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전략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전술적 교범이랄까.
이미 말한 대로 몇 가지 재미있었던 예화를 올려 보겠다.
예화 1
세 군데 길에서 좁혀 들어가는 방법
三路兵進法(삼로병진법)
무신론자인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삼로병진법을 이용해 유신론자들의 주장을 격파해 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무신론을 주창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먼저 전제한다. 신이 있다면 세상의 악은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도 세상에 악은 여전히 존재한다. 유신론자들 역시 신의 존재와 악의 존재를 인정하고 악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세 가지 질문
① 신은 원하기는 하지만 세상의 악을 제거할 능력이 없다. = 신은 만능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무능력은 신이라 할 수 없으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② 신은 능력은 있지만 세상의 악을 제거할 뜻이 없다. = 이 경우 신이 악의(惡意)를 지녔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런 존재는 신이 아니다.
③ 신은 능력도 있고 세상의 악을 제거할 뜻도 있다. = 이 경우가 우리가 아는 신과 가장 잘 어울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세상에는 악이 판치는 것일가?
삼로병진법은 세 갈래 길로 적을 공격하는 듯 하지만 결국 어떤 대답을 하든 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언술 전략이다.
예화 2
일단 놓아주고 뒤에 사로잡는 방법
先縱後擒法(선종후금법)
이 방법은 놓아주는(縱) 수단을 활용하여 끝에 가서 잡는(擒) 목적을 이루는 방법인데 스스로 파탄을 노출하여 적을 깊숙이 유인하는 모략법이다.
갑: (누군가를 훈계하려는 태도로) 네 눈 앞에 도덕과 돈이 놓여있는데 둘 중 하나만 택하라면 둘 중 무엇을 택하겠니?
을: 돈을 택할 거야(일부러 놓아준다.)
갑:(의기양양하게) 나라면 돈이 아니라 도덕을 택할 거야
을: 그렇겠지. 누구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선택하게 마련이니. 자네도 자네에게 부족한걸 선택하겠지.(꼼짝 못하게 잡는다.)
이 이야기는 마치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돼지, 부처 이야기와 겹쳐지는 것처럼 보인다. 다 알다시피 “부처 눈에는 부처가,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는 말로 태조를 훈계한 무학대사 역시 허점을 노출하여 상대를 안심시킨 후 반격을 가해 사로잡는 방법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이건 내 생각)
예화 3
상대의 화제를 빌려 반격한다.
借題發揮(차제발휘)
러시아의 이름난 서커스단의 어릿광대 역을 하던 두로프가 연기를 마치고 잠깐 쉬는 중에 한 오만한 관중이 그의 면전에 대고 비아냥거렸다.
“광대선생, 당신은 꼭 그렇게 바보같고 괴상하고 멍청한 얼굴로 분장을 해야 관중의 사랑을 받는 겁니까?”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두로프는 덧붙여 말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이 참 부럽습니다. 만약에 내가 당신같은 얼굴을 타고 났다면 관중들의 인기를 완전히 독차지해 적어도 지금보다 월급을 두 배 이상 받을 수 있을텐데요. 아깝군요. 당신의 얼굴이...”
뭐 더 이상의 해설이 필요치 않은 방법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일화들이 있으나 다 써 버리면 재미가 없을 터이니 이만 줄입니다.
맹자가 “남을 아는 것은 지혜라 하고 나를 아는 것은 현명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이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 자신의 약점과 허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언변의 책략에 앞서 이루어야 할 것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그리고 이런 언변의 책략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독서와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를 이기거나 속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를 위한 충심어린 충고를 할 수 있는 “진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남재 군과 이미 나눈 이야기이기에 더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남재 군이 이 모든 조건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 책이 충분한 도움이 되어 힘을 발휘하리라 기대해 봅니다.
더 재미있는 일화와 이야기들은 더 듣고 싶은 분들은 개인적으로 술 한 잔 하자고 연락하심 제 얘기까지 보태서 많이 들려 드리겠습니다. 비도 오고 마음도 촉촉한데.... ㅋ
*추신
제 마누라님-김정현-이 말씀하십니다.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다고 밝히라고 하십니다. 안 그러면 내가 많은 후배들을 낚는 거라며. ㅎㅎㅎㅎ
채남재 (2011/07/14 09:46:10)
많은 후배들을 낚으신듯 합니다. 1人이 지금 서점으로 지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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